절약의 역설

개인이나 가계에서 절약은 미덕입니다. 절약은 곧 저축을 의미하고 저축은 부채를 갚고 더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해 줍니다.

그러나 개인이나 가계가 모두 절약을 하면 거시 경제 측면에서는 더 이상 미덕이 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를 절약의 역설(the paradox of thrift) 또는 저축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절약의 역설과 관련된 내용이 기사화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저축률 19년만에 최고, 저축의 역설 우려 같은 기사를 볼 수 있네요. 저축률이 높아져서 저축의 역설(절약의 역설) 현상이 한국경제에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절약의 역설이란?

절약하여 저축을 늘린다는 말은 소비를 줄인다는 말입니다. 소비가 줄면 투자와 고용도 줍니다. 투자와 고용이 줄면 개인의 소득이 줄어들겠지요. 소득이 줄어들면 생활은 더 어려워집니다.

더 풍족한 생활을 기대하고 절약을 했지만 생활을 더 어려워지는 현상이 바로 절약의 역설입니다.

절약의 역설은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가 주장한 경제 이론인데요, 아래 절약의 역설 그래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각 개인이 절약을 통해 저축을 늘리면 각 개인의 저축을 모아 놓은 저축선 SS가 위로 올라가 S’S’가 되지만, 투자선 II와 만나는 균형 소득은 E에서 E1 줄어들게 됩니다.

절약의 역설 그래프

절약의 역설에서 주의할 점

절약의 역설과 반대되는 이론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제 이론이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 세의 법칙(Say’s Law)입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늘어난 저축은 투자로 연결되어 투자가 늘어나고 늘어난 투자는 소득 증가로 연결되어 소비도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공급이 알아서 수요를 창출하는 일은 장기적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단기적 또는 일시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때가 많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저축이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 절약의 역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축의 증가가 항상 저축의 역설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케인스도 불황의 시기에 절약의 역설이 일어난다고 했으니 항상 절약의 역설이 일어난다고 본 것은 아닙니다.

또한 앞에서 본 절약의 역설 설명은 폐쇄 경제를 가정한 설명이었는데요, 개방 경제에서는 저축의 증가로 줄어드는 투자액은 외국 자본으로 보충될 수 있습니다. 개방 경제에서는 절약의 역설의 힘이 줄어든다는 거죠.

게다가 국민계정 상 투자와 항상 일치하는 저축은 총저축입니다. 즉 민간저축과 정부저축의 합입니다. 따라서 민간 부문에서 절약을 하여 저축을 늘인다고 해서 반드시 절약의 역설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민간저축이 늘어나도 정부저축을 줄인다든지 하여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 지출을 줄이는 것은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입니다. 재정 지출 증가를 통한 총수요 증가는 케인스가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하죠. 케인스 이론 자체에 절약의 역설을 방지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셈입니다.

한국경제와 절약의 역설

저축률이 오르기만 하면 절약의 역설 우려를 담은 경제 기사가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우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투박하지만 아래에 민간 저축률을 나타내는 개인순저축률과 (前期대비)민간소비증감률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일단 한번 보시죠.

연도 개인순저축률(%) 전기대비 민간소비증감률(%포인트)
2010년 4.1 4.2
2011년 3.4 -1.5
2012년 3.4 -1.0
2013년 4.9 0.0
2014년 6.3 -0.2
2015년 8.1 0.5
2016년 8.1 0.3

(개인순저축률:e-나라지표, 전기대비 민간소비증감률: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2010년 이래로 민간소비가 전년도 보다 줄어들기도 하고 늘기도 합니다. 늘어도 아주 조금만 늘고 있기에 소비가 부진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민간 소바와 개인순저축률과의 연관성은 없어 보입니다.

2011년 개인순저축률은 3.4%로 2010년 4.1% 보다 줄었지만, 2010년 대비 민간소비는 1.5% 포인트 줄었습니다. 2015년 개인순저축률은 8.1%로 2014년 6.3% 보다 늘었지만, 민간소비는 0.5% 포인트가 늘었습니다.

절약의 역설 현상이 일어나려면 저축률이 증가할 때 소비가 줄어야 하지만 위 표에서 그런 현상은 확인되지 않는군요.

또한 2015년과 2016년의 개인순저축률 8.1%가 높아 보이지만, 1988년의 개인순저축률 약 25% 그리고 일본 경제가 불황에 빠지기 전의 15% 수준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편입니다.

가계부채 현황을 고려해 보면 저축률 증가는 사실 바람직합니다. 가계 저축이 늘어나야 가계 부채도 해소할 수 있을터이니까요.

물론 민간 소비 부진으로 경기가 활력을 띠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이긴 합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득 주도 성장론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소득이 늘어나야 소비도 늘어날터이니까요.

저축률이 증가하므로 절약의 역설(저축의 역설) 우려가 있다는 말은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은 여력이 된다면 아니 여력이 없어도 허리띠를 졸라매서 저축을 더 해야 할 때입니다. 소득 증가를 위한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 줄 필요도 있고요.